이상적인 리더의 자질
추천 : ★★★★★
만약 이 책이 현대에 나왔더라면 리더, 리더십과 같은 키워드가 붙은 자기 계발서였을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이 이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자 이름과 책 제목은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책 자체는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꽤 많을 것이다.
부담스러운 이름, 어려울 것 같은 느낌, 전공/교양서적 같은 냄새..
혹은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느낌으로 흥미보다는 부담이 느껴지는 책.
익숙한 책 이름에 비해 이 책을 마주한 느낌은
결고 친숙하거나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 사장이 된다면, 당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당신이 리더가 된다면..
하지만 군주론은 전공책도 아니고,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쉽게 말하면 지도자 즉,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담아놓은 책이다.
리더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조직이나 단체 따위에서 전체를 이끌어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
이라고 나와있다.
군주론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당신이 이런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면 요즘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리더십 관련 자기 계발서는 일단 멀리 던져두고 반드시 군주론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쉽게 한 번 말해보겠다.
우리는 사회에서, 회사에서, 학교에서 다양한 성격의 리더를 만날 수 있다.
난 회사에 다니므로 회사를 예로 들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4가지 유형의 직장상사를 뽑아보겠다.
항상 인상 쓰고 직원들에게 호통을 치는 '공포의 김 부장'
항상 웃는 얼굴로 부하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은 '인자한 이 부장'
일은 잘 못하지만 사내정치에 능한 '밉상스러운 박 부장'
주변에 관심 없고 주어진 일만 하는 '정 없는 최부장'
더 다양하겠지만 꽤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이상적인 군주는 저 중에 없지만 다들 최소 1개 정도의 조건은 갖추고 있다.
그럼 우리는 군주론 책은 잠깐 옆에 두고 사장님이 되어보자.
만약 당신이 사장(마키아벨리)이라면 저 부장(군주) 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공포의 김 부장
솔직히 사장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이 좋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람과 동물의 가장 큰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공포'라는 감정 앞에서 한없이 비겁하고 약해진다는 것이다.
김 부장은 공포 분위기 조성을 통해 직원들을 휘어잡는다.
직원들의 불만은 날로 높아져가겠지만 업무 성과만큼은 꽤 탁월할 것이다.
실적이 잘 나오니 사장 입장에서는 김 부장을 데리고 있는 것이 좋다.
게다가 악역도 담당해 주며 피곤한 일을 덜어주니 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너무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직원들은 저런 리더에게 충성심을 가지기 힘들다.
단기 실적은 잘 나올 수 있겠지만 퇴사율은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이다.
- 인자한 이 부장
이 사람은 회사에서 꽤 평이 좋다.
김 부장이 소리 지르고 서류 집어던질 때 이 부장은 직원들에게 커피를 돌린다.
직원들이 실수해도 괜찮다고 해주고 수습까지 해준다.
직원들은 당연히 이 부장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게 된다.
뒤에서 김 부장을 씹으며 이 부장'님'은 추켜세운다.
하지만 저런 이 부장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직원들은 김 부장에게 느끼는 공포심을 이 부장에게는 느끼지 못한다.
처음에는 민심도 얻고 모든 것이 원활할 것이지만 곧 상황이 바뀐다.
사람은 참 간사해서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얕보기 시작한다.
이건 그 사람의 인성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본능적으로 나를 편하게 해 주고 잘해주는 사람은 만만하게 느낀다.
그렇다고 이 부장이 갑자기 김 부장처럼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면
사람들이 자신들을 잘못을 깨닫고 이 부장을 따를까?
아닐 것이다.
갑자기 저 인간이 왜 저러나 하며
미친개 김 부장을 능가하는 사이코 이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것이다.
- 밉상스러운 박 부장
직원들 입장에서 제일 얄미운 사람이다.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윗사람에게 알랑방귀 뀌며
시쳇말로 '정치질' 하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사장 입장에서는 좋은 사람일까?
사장도 박 부장이 얄미운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크게 손해 볼 것이 없어서 옆에 둔다.
왕의 옆에는 항상 광대가 있었듯이,
사장 입장에서 박 부장은 심심풀이 땅콩 같은 존재다.
같이 골프도 치러 가고, 옆에서 아부도 떨어주고..
일만 잘하면 참 좋을 텐데 사장도 박 부장이 뜨거운 감자로 느껴진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박 부장은 결코 수명이 길지 못할 것이다.
내세울 것 없이 정치로 흥한 자는 정치로 망하게 된다.
- 정 없는 최 부장
이 사람은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도 아니고, 윗사람에게 사랑받는 존재도 아니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어떻게 보면 조금 음흉해 보이기도 한다.
박 부장과 정 반대의 사람이다.
정 반대의 사람이긴 하지만 직원들이 박 부장을 싫어한다고 해서
최부장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이 사람은 주변에 너무 관심이 없어서 아무에게도 신경을 안 쓴다.
그저 직원 1, 직원 2, 직원 3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사장 입장에서 이런 사람을 보면 전혀 유능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 회사 한 부서의 장이라기보다는 돈 주고 고용한 용병에 가까운 사람이다.
주어진 일은 곧잘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회사에 도움 될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회사에 대한 애착은 전혀 없고 의무감으로 일하는 것 같아 보인다.
언제라도 나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사장과 직원에게 전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이상적인 군주란 어떤 사람인가?
내가 군주론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2개 뽑아보겠다.
인간은 해롭게 생각된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은혜를 입으면 더욱 고마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군주론 제9장. 시민과 귀족>
군주가 백성들로부터 관대하다는 칭송을 듣고자 하면 사치스럽고 과시적인 혜택을 베풀어야만 한다.
이런 허세는 이내 군주의 모든 자산을 탕진케 만든다.
군주가 뒤늦게 깨닫고 방침을 바꾸려 들면 즉각 인색하다는 악평이 돌게 된다.
<군주론 제16장. 품성과 처신>
매일 잘해주는 사람이 오늘도 역시 잘해주는 것과 매일 화내던 사람이 갑자기 한 번 잘해주는 것은 아쉽게도 그 가치가 다르다.
착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늘 관대한 것은 군주의 덕목과 거리가 멀다.
당신이 착한 사람, 즉 남에게 험한 말 못 하고 자신이 모든 걸 떠안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리더에 어울리지 않는다.
당신은 리더가 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할 확률이 높다.
그 상황을 타개하고자 관대함 마저 버린다면 그것은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공포심만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휘어잡는다면 다들 나를 벗어날 기회만 노리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도 보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되었지 않은가.
군주 혼자 다스릴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마키아벨리의 말을 인용하면 두려운 존재로 군림하되 증오심은 사지 말아야 한다.
이는 공자가 말한 군자의 덕목 '중용'과 비슷하다.
지도자는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아야 한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두려움과 증오심을 비교해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두려움은 쉽게 말해 범접할 수 없는 존재에게 느끼는 무거운 감정이고,
증오심은 내가 저항할 수 있는 만만한 상대에게 느끼는 가벼운 감정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이상적인 군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뭔가 애매하다.
물론 군주론을 모두 읽어보면 군주를 저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비약이 있다.
하지만 내가 군주론을 보며 떠오른 인물이 한 명 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무리지만
한 인물로 요약해 볼 수는 있다.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를 읽어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평화 시에는 사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겸손한 침묵과 자기 낮춤이지만,
전쟁의 폭발음이 우리 귀를 울릴 때, 그때는 행동이 호랑이 같아야 하나니.
<셰익스피어 헨리 5세 3막 1장>
어떻게 보면 셰익스피어 희곡에 나오는 헨리 5세가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군주에 가까운 인물이 아닐까 싶다.(물론 실제 헨리 5세는 희곡과 다르다.)
'군주'라는 글자를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리더의 명칭으로 읽어보길 바란다.
선배여도 좋고, 선생이어도 좋고, 사장이어도 좋고, 대통령이어도 좋다.
지금 지도자의 위치에 있거나, 그 위치를 갈망하는 사람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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