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터널 선샤인
감독 : 미셸 공드리
주연 :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조연 : 마크 러팔로, 일라이저 우드, 톰 윌키슨
회색빛 멜로 영화
흔히 멜로 영화라고 하면 남녀 주인공이 나와서 어떻게 만나고, 어떤 위기를 겪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여 사랑을 이루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영화 전반에 걸쳐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 혹은 감동적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터널 선샤인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작부터 춥고 칙칙한 회색빛 겨울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주인공들은 멋있고 예쁘기보다는 어딘가 지쳐 보이고 쓸쓸해 보인다. 왜 첫 장면부터 그렇게 방황하는지 관객은 아직 알 수 없다.
조엘, 기분이 이상했던 하루
잠에서 깬 조엘은 유난히 피곤함을 느꼈지만 언제나 그랬듯 똑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 준비를 하고 차를 타러 내려가지만 차의 옆부분이 심하게 찌그러져 있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옆 차가 그랬으리라 생각하고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긴 채 출근길에 오른다. 기차역에 도착한 그는 전혀 충동적인 행동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느닷없이 출근 열차가 아닌 몬톡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추운 겨울 바다에 도착한 그는 하염없이 바다를 걷고, 멍하니 앉아 상념에 빠진다. 그곳에서 클레멘타인이라는 한 여자를 만난다. 조엘과 전혀 상반된 모습으로 자유분방해 보이는 클레멘타인은 서슴없이 조엘에게 말을 걸어오지만 성격이 소심한 조엘을 어색해하며 그녀와의 대화를 피한다. 하지만 둘을 빠르게 가까워져 한 밤 중 얼어붙은 강에서 데이트를 하는 등 서로에게 호감을 느껴가기 시작한다.
그녀의 기억을 지워주세요.
조엘은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클레멘타인의 직장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조엘을 처음 보는 사람 취급하며 다른 남자와 키스까지 하는 모습을 보인다. 충격을 받은 조엘은 그녀가 짓궂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클레멘타인은 조엘을 기억에서 지웠다. 조엘은 이 말도 안 되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인 '라쿠나'를 찾아간다. 그리고 기억을 지우는 것이 가능하고, 클레멘타인이 조엘을 기억에서 지웠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한다. 화가 난 조엘은 자기 머릿속에서도 클레멘타인을 지워달라고 한다.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는 그녀와 관련된 모든 물건이 필요했다.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관련된 모든 물건을 가져가서 머릿속에 각각의 기억이 위치하는 곳에 좌표를 확인하게 된다. 그날 밤 집에서 수면제를 먹고 잠든 조엘을 확인한 '라쿠나' 연구원 들은 그의 집에 들어가서 기억을 지우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제발 이 기억은 남겨주세요.
조엘은 꿈속에서 클레멘타인과의 기억 속을 헤매기 시작한다. 얼마 전에 싸웠던 기억부터, 권태로웠던 그녀와의 관계까지 하나씩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떠올릴 때마다 그 기억은 눈앞에서 희미해져 간다. 조엘은 어느덧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라 그녀를 지워가고 있다는 사실이란 것을 깨닫는다. 그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화를 내는 그녀에게 조엘도 화를 퍼붓는다. 단순히 그날의 기억일 뿐인데 말이다. 그때와 똑같이 그녀와 싸우며 네가 날 기억에서 지웠으니 나도 널 지우고 있다고 하며 그녀를 원망하고 기억을 하나씩 지워 나간다. 최근의 좋지 않았던 감정의 기억들이 하나둘씩 지워지고, 그녀와 행복했던 기억들이 지워질 차례가 온다. 이제 와서 다시 떠올려보니 참 좋았던 기억들이다. 하지만 좋았던 기억들도 예외 없이 지워지기 시작한다. 조엘은 눈물을 흘리며 제발 이 기억만큼은 남겨달라고 소리치지만 그건 꿈속의 외침일 뿐 기억을 지우고 있는 연구원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결국 조엘은 기억 속 클레멘타인을 데리고 그녀의 기억을 숨겨놓기 위해 자신의 머릿속 여기저기를 헤매기 시작한다. 하지만 매번 실패하여 모든 기억이 지워지게 되고 결국 클레멘타인과 처음 만났던 기억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조엘은 그것이 마지막으로 남은 기억이란 것을 깨닫고 그녀를 필사적으로 숨기려 하지만 어느새 다 지워진 그의 기억과 꿈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더 이상 그녀와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것을 깨달은 조엘은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후회한다. 기억 속 클레멘타인은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말과 함께 몬톡에서 만나자는 말을 끝으로 모든 기억이 지워진다.
그리고 첫 장면
사실 영화 첫 장면은 기억이 모두 지워진 뒤 아침에 일어나는 조엘의 모습이었다. 조엘은 잠에서 깨서 아무 기억도 없이 충동적으로 몬톡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클레멘타인을 다시 만나지만 아무 기억도 하지 못한다. 둘은 다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만남을 이어 나가지만 '라쿠나'에서 한 직원의 양심 고백으로 기억을 지운 모든 사람에게 기억을 지울 때 녹음한 테이프가 배송된다. 조엘과 클레멘타인도 그 테이프를 받고 테이프 속 녹음된 서로의 목소리가 서로에게 나쁜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된다. 서로에게 험담을 하는 것으로 실망한 둘은 다시 헤어져서 각자 집으로 향했지만 모든 기억이 돌아온 둘은 다시 만나서 서로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지만 또 그러면 뭐 어때라는 조엘의 말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망각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살다 보면 잊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 시간이 흐르면 잊고 싶은 기억들의 대부분 잊히거나, 아니면 좋은 기억으로 정제되어 머릿속에 남아있게 된다. 굳이 '라쿠나'에 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뇌는 적절하게 필터링을 해서 수많은 기억들 중 좋은 추억들을 간직해준다. 그리고 그 좋은 추억을 통해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터널 선샤인은 평범한 멜로 영화와 달랐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기억에 남는 영화다. 고등학생 때 처음 보고는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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