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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더 킹: 헨리 5세, 진정한 리더의 모습

by 페펭 2021.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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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더 킹: 헨리 5세

감독 : 데이비드 미쇼

주연 : 티모시 살라메, 조엘 에저튼

 

더 킹: 헨리 5세의 역사적 고증

사실 역사적 고증이 잘 된 작품은 아니다. '영국인들을 위한 고전 히어로물' 정도로 볼 수 있다. 인물 고증부터 실제와는 정반대로 되어있다. 작품 내에서 체구가 아담하고 연약해 보이는 미소년의 모습을 한 헨리 5세와 달리 실제 헨리 5세는 키가 크고 전투를 좋아하는, 미소년보다는 상당히 거친 남자에 가까웠다. 셰익스피어의 희곡부터 수많은 헨리 5세에 관한 영화를 거치며 헨리 5세라는 인물은 많이 왜곡되고 실제보다 미화된 부분도 많지만,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넷플릭스 영화 하나만 떼어놓고 그를 판단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리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헨리 5세, 왕의 자격이 있는가

헨리 5세는 왕이다. 왕이 자신의 능력 여하와 상관없이 신하와 백성에게 존경받고 그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가장 쉬우면서도 기본적인 조건 중 하나는 바로 왕위 계승의 정통성이다. 자격이 없는 자가 무력을 사용하여 부당하게 즉위하거나, 정통성이 떨어지는 자가 왕위를 계승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인물일지라도 신하와 백성들로부터 그 권위에 대한 정당성이나 경외심을 쉽게 얻을 수 없다. 물론 무력을 사용하여 왕위를 찬탈한 자는 공포심을 이용하여 통치를 이어 나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군주의 덕목 하나를 인용하자면, 군주는 두려운 존재로 군림하되 증오심은 사지 말아야 한다. 공포심을 이용하여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쉽게 증오심을 사 결국 구성원의 배신과 의절이라는 결과를 불러온다.

헨리 5세는 위에서 나온 가장 쉬우면서 기본적인 조건부터 갖추지 못한 왕이다. 헨리 5세의 아버지 헨리 4세는 왕위 찬탈의 장본인이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왕이 되었으니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반란을 계속 신경 써야 했다. 게다가 헨리 5세는 장남이긴 했지만 왕좌를 이어받기를 거부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헨리 4세는 그런 아들이 못 미더워 차남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하였으나, 그는 전쟁에서 전사하고 만다. 어쩌다 보니,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왕이 된 헨리 5세는 누가 보더라도 정통성도 부족하고 왕좌를 이어받을 자격도 부족한, 왕보다는 탕아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그래서 신하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타국에서 조차 왕좌를 이어받은 헨리 5세를 어린아이 보듯이 무시하고 조롱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런 주변의 시선과 달리 극 중 내내 헨리 5세는 큰 감정 변화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견디며 내적 갈등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인다. 믿고 의지할 곳도, 속을 터놓을 사람도 없다. 왕권이 약해진 틈을 타 옆 나라 프랑스는 계속 도발을 하고, 신하들은 그러한 프랑스와의 전쟁을 선포할 것을 부추긴다. 그 사이에서 헨리 5세는 계속 주저하고 갈등한다. 왕으로서 자격이 의심되던 그였지만 왕이 되기 전 오랫동안 전쟁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던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백성을 사지로 몰아내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프랑스의 왕세자를 찾아가서 전쟁 대신 자신과 단 둘이 결투하여 전쟁을 끝낼 것을 청하지만 그마저도 거절당한다.

 

아쟁쿠르 전투에서 보여준 진정한 왕의 모습

결국 전쟁을 준비하게 된 잉글랜드는 이미 많은 병사들이 지쳐있었고, 전투에서 질 확률이 컸기 때문에 사기는 바닥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헨리 5세는 평소 자신이 믿었던 기사 한 명의 전략을 존중한다. 그 전략은 자칫하면 병사들은 물론 국왕까지 모두 죽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전략이었고, 그렇기에 다른 신하들은 이 무모한 전략을 반대한다. 하지만 헨리 5세는 전투에서 이기고 나아가 국가를 수호할 수 있는 전략이라면 자신이 위험해지는 것은 상관없다는 듯이 그 전략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뒤에서 전투를 명령하는 것이 아닌 그 전략의 최전선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바닥에 떨어진 사기를 북돋기 위하여 병사들의 앞에서 절박하게 연설한다.

여기서 우리는 주인공 헨리 5세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절박한 왕의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도 있겠지만, 왕을 따르는 병사들에게 감정을 이입해볼 수도 있다. 병사들은 곧 죽을 것이다. 설령 전투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역사는 왕의 이름을 기억하지 병사의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선 왕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나는 그런 왕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만약 헨리 5세가 말만 그럴듯하게 하고 병사들의 뒤에서 전투를 명하였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헨리 5세는 자신이 먼저 적진으로 몸을 던졌다. 적의 칼이 턱 끝까지 들어오고 생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 국가의 왕이 맨 앞에서 사지로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고 자신만 살고자 도망치는 병사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앞서가는 왕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는 병사들이 많을 것이다.

 

리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사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많은 리더들이 책임은 피하고 권한을 누리고 싶어 한다. 동시에 겉보기에는 그 반대의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 편이 훨씬 정의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 속 헨리 5세처럼 말이다. 헨리 5세는 분명 자신에게 주어진 막대한 권한인 왕권을 이용하여 자신의 안위를 지킴과 동시에 수많은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 나라를 지키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짊어졌다. 그는 병사들을 이용하지 않고 이끌었다. 한 나라의 왕인 나를 위해 싸우라고 하지 않고 당신들이 살고 있는 국가를 위해 싸우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순간 병사들 각각 모두 필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웠다. 헨리 5세에게 그를 따르는 병사는 일개 병사가 아니라 위대한 병사였다. 그리고 위대한 병사들은 그런 왕에게 충성을 다해 전투에 임할 수 있었다.

성군이나 폭군이나 조직을 이끄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 목적은 하나로 수렴된다. 바로 자신이 속한 조직의 번영이다. 수많은 리더들은 비슷한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성군이 되자니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어렵고 능률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폭군이 되자니 능률은 올라가지만 충성심이 떨어지고 조직원들이 나를 떠난다. 

보수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리더는 절대로 조직 구성원들과 허물없이 편하게 지낼 수 없다. 구성원들이 즐거워할 때 그 즐거움을 함께 할 여유도 없고, 나약할 때 그 나약함에 함께 물들 수도 없다. 리더와 구성원은 서로를 공감할 수 없는 사이다. 만약 리더가 구성원들과 편한 관계로 지내고 있다면 그것은 본인만의 착각이거나 리더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허수아비나 광대에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리더는 불편해야 한다. 그리고 꽤 부담스러워야 한다. 하지만 미움을 사는 행동, 즉 조직원에게 감정을 내비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조직 구성원들은 편하고 재밌는 리더를 원하지 않는다. 대신 조직에게 확실한 목표와 동기를 부여하고, 결과에 대한 보상을 적절하게 해 주며 이후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를 원한다. 마치 영화 속 헨리 5세가 그랬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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