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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원더풀 라이프, 당신의 기억 중 하나만 골라주세요.

by 페펭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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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거리 요약을 할 수가 없다.

영화 보는 내내 영화를 봄과 동시에 나는 어떤 기억을 고를 것인지 생각했다.

 

처음엔 굉장히 설정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다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착한 일을 하면 천국에, 나쁜 일을 하면 지옥에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생전의 기억 하나를 간직한 채 저 세상을 간다는 것이었다.

권선징악 혹은 지루한 윤회 같은 것 없이 내가 원하는 기억 하나만 가지고 간다는 설정이 참 예뻤다.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울 정도로 잔잔한 인터뷰 형식으로 영화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내 추억 하나를 고르기 시작했고, 결코 예쁜 설정이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참 잔인한 설정이었다.

 

내가 고른 단 하나의 기억 빼고는 모두 지워지는 것이다.

살면서 좋았던 기억이 딱 하나인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팍팍하더라도 생각해 보면 좋았던 순간은 꽤 많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좋아하는 장소, 내가 좋아하는 놀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포근함이 느껴지는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 우리 반 선생님이 제일 예쁘다고 하며 다른 반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일.

부모님과 함께 축제에 가서 토끼 인형탈을 쓴 사람과 사진도 찍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던 날.

아버지와 함께 집에 앉아서 자동차를 조립해서 가지고 놀던 날.

엄마 무릎에 누워서 귀청소를 받으며 노곤하게 졸던 날.

아무 걱정 없이 친구들과 함께 놀던 놀이터.

처음으로 100점 맞은 시험지를 들고 신나게 집으로 돌아가던 날.

좋아하는 여자애와 밤이 늦도록 문자를 주고받던 밤.

대학교 합격 통보를 받고 부모님과 함께 좋아하던 날.

군생활을 끝내고 전역하며 부대를 나서며 올라탄 버스 안에서 느낀 오묘한 자유로움.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바다를 보러 간 날.

대학교 졸업식에 부모님, 친구들이 와서 함께 축하해 준 날.

첫 월급으로 산 커피머신을 보고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모습.

친구들과 함께 1박 2일 놀러 가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술 한 잔 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던 날.

 

이것 말고도 셀 수 없이 많은 기억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내가 행복했던 기억을 골라야 할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최대한 많이 등장했던 날을 골라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정말 예쁜 기억 하나를 간직하고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굉장히 평범한 날이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던 날의 기억을 고르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며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새 사람들이 떠나가고 여전히 선택을 못한 나는 남겨진다.

정말 딱 하나의 기억만 선택하자니 내가 고르지 않은 날들과 사람들이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물론 그 기억 외에 다른 것은 모두 잊히겠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며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말 지극히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다.

하지만 나의 기억 하나를 함께 고르며 보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의 영화가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훑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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