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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꺼내기

그냥 하는 것

by 페펭 2023.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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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뭔가 하려고 하면,

그게 일이든 혼자 노는 것이든 누군가와 함께 노는 것이든 하기 전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딱히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주로 이걸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재밌게, 더 효율적으로, 더 효과적으로 할지 생각한다.

어떤 선택을 해야 더 좋을지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비슷한 것을 보면서 '저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며 삼천포로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정작 내가 생각하는 10가지의 무언가가 있다면 그중에 실행되는 것은 2~3개 정도 될 것이다.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기름값이 가장 싼 주유소를 찾아서 전국을 헤맨다.

 

내가 하는 일이 항상 이러했다.

물론 가장 저렴한 방법을 찾는 것은 아니지만 늘 생각이 앞서 행동을 방해했다.

그래놓고 결국 생각만 하다가 하지 못하면 그때는 합리화를 한다.

했으면 손해였을거야, 나가서 놀았으면 힘들었을 거야,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하나의 일을 하는데 많은 근거가 필요했고, 그 근거들 중에 하나의 허점만 보여도 실행하지 못했다.

 

단적인 예로,

'살을 빼야 하니 유산소 운동을 해야겠다.'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

헬스장에 갈까, 그냥 공원을 뛸까? 헬스장은 비싸고 공원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운동화도 러닝화가 없는데 하나 사야 하나? 러닝화 사면서 운동복도 하나 새로 사야 하나? 달리기 하나 하려니까 돈이 너무 많이 드네. 그냥 원래 하던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할까? 차라리 그냥 줄넘기를 할까?

이런 생각들이 들며 해야 할 이유들은 어느새 수많은 핑계들로 가려지게 되고 결국 유산소 운동은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그러다가 얼마 전 기안 84의 유튜브 인생 84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너무 재밌고 웃겨서 보는데 사람들이 기안 84에게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라고 부르는 이유를 대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틀렸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절대로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가 아니었다.

뭔가 일상이 대충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고, 무신경한 모습들이 많이 보이지만 그건 자기 목표 외의 것들일 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소위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모습이었다.

 

효율성? 방법? 그런 걸 생각하기 전에 그냥 바로 시작하곤 했다.

자신만의 운동 방법을 알려준다면서 그냥 밖에 나가서 이렇게 저렇게 하더니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단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단순함은 내가 여태까지 너무 쉬운 일도 너무 어렵게 해 왔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또한 그에게 단순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56km 달리기를 하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장거리 달리기에 앞서 제대로 된 러닝복을 갖춰 입고, 플랜을 짜서 시작하겠지만

그는 달리기에 적합해 보이지 않는 옷을 입고 그냥 발이 닿는 대로 뛰며, 배고프면 밥을 사 먹고 뛰었다.

적합하지 않은 옷 때문에 살이 쓸리면 약국에서 밴드를 사서 붙이고 뛰었고, 심지어 나중에는 그 고통이 마취된 것처럼 아프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만약 56km 달리기를 계획했다면

1. 우선 적합한 복장과 러닝화를 준비하고

2. 상당히 긴 거리인 만큼 땀 닦을 수건이나 여분의 옷, 약간의 음료들을 넣을 수 있는 작은 가방을 준비하고

3. 발이 쓸려서 물집이 잡힐 수 있으니 물집을 방지할 수 있는 패드를 붙이고

4. 중간에 하는 식사는 달리기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한 메뉴를 미리 찾아뒀을 것이다.

5. 그리고 정말 내가 56km를 뛸 수 있을까 수십 번을 고민한 끝에

6. 결국 너무 무리라는 생각을 하며 공원에 나가서 조깅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기안 84의 모습을 보며 너무 비효율적이다, 너무 계획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난 그 영상을 보고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멋있고 그렇게 무작정 달리는 모습이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려는 것,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놓고 시작하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모든 것을 정말 완벽하게 준비했다 하더라도 결과 또한 완벽하다는 보장을 하지 못한다.

준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이 과해진다면 늘 준비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최고의 준비를 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그리고 그냥 하는 것.

 

한 번의 완벽한 기회를 기다리기보다는 여러 번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성공을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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